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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_그림이야기

바로크의 문제아, 어둠 속 아름다움을 그려낸 카라바조

by 토비언니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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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뜻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하지만 그 강렬함이 너무 남아 계속 감상하고 싶어지는 그림을 그렸던 그.

바로크 시대의 진정한 문제아, 바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를 빼놓고 싶지 않습니다.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치는 동안, 경찰 수배만 17번, 감옥수감만 7번, 6번의 탈옥과, 폭행, 기물파손 까지 그가 한 만행을 읊자면 끝도 없을 정도 입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부유한 후원자들 덕에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지만, 결국 끝없는 시비와 폭행, 다툼 끝에 살인까지 저지르며 도망가는 신세에 처해지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막장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 by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출처:Wikimedia Commons

 

 

도피 기간 중 몰타의 기사단에 입성함으로써 기사의 영예로운 작위가 수여되며 성요한 성당의 제단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 그림이 바로 <세례요한의 참수-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 입니다. 세례요한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생생한 현장을 그려내며, 공포와 절망,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명령을 하는 자와 담담히 명령을 수행해 내는 자, 그리고 곧 잘려진 머리가 건내질 것을 아는 듯 접시를 건내는 소녀, 어둠 속의 죄수들은 목을 빼며 참수를 쳐다보는 장면까지… 특이한 점 한가지는 카라바조가 여태 하지 않았던 자신의 서명을 그림에 남겼는데요. 그것도 세례요한의 잘린 목에서 바닥에 흐른 피로 자기 이름 미켈란젤로가 쓰여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듯 참옥한 장면이지만, 순교자의 신성한 피를 대신해서 자신의 죄, 자신의 더러워진 이름을 씻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다른 기사를 공격해서 또 다시 쫏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로마에선 교황의 조카가 그를 사면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그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림을 준비하는 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이 바로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by&nbsp;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출처:Wikimedia Commons

 

 

원래 양치기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쓰러뜨린 용맹함과 선함의 상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승리의 기쁨이나 악을 처단한 당당함 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연민이 느껴지기만 합니다.

참수된 괴기스런 골리앗의 머리는 그의 자화상이 되었으며, 이 그림에서 사악함을 표상하는 것은 카라바조 자신이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슬픈 표정의 다윗의 모습 또한 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그림을 준비해서 아픈 기억들이 남겨진 그의 고향 로마로 향하지만, 항구에 정박한 동안 사면소식을 듣지 못한 지방 경비대장이 그를 다른 죄수와 묶어두고, 그는 그의 그림과 나뉘어져 다른 배에 실려 그의 그림의 뒤를 쫏다 해변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nbsp;by&nbsp;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출처:Wikimedia Commons

 

 

그의 대표작인 <성 마테오와 천사 -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얼킨 에피소드는 한번쯤은 보셨을 꺼라 생각되는데요. 위에 보시는 두 작품 모두 교회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린 것으로 성 마테오가 천사의 인도로 복음서를 저술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성인들을 고귀하고 품위있게 묘사하였던 것과는 달리 첫번째 작품에서는 머리가 벗겨진 모습에, 맨발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천사의 목소리를 받아 기록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그가 연출하고자 한 마테오의 모습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심지어 전도하러 돌아다니느라 때가 낀 발의 모습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의도와는 다르게 교회에서는 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림을 거절하였고, 결국 다시 재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처음 그렸던 그림과는 달리 두번째 그림에서 처럼 이상화된 성자의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신과 인간의 모습에서 갈등한 그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The Death of the Virgin by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출처:Wikimedia Commons

 

 

이와 같은 또 다른 예로 <성모의 죽음 - La Mort de la Vierge>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를 그리는데 카라바지오가 사랑했던 창녀를 모델로 써서 문제가 되었다고 하고, 본인은 로마의 강변에서 건진 여자 시체를 모델로 삼아 그렸다고도 하는데, 어찌되었건 흐트러진 옷과 머리, 푸르게 변한 몸 색까지, 이리도 비천하게 마리아를 그린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 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카톨릭 이념에 반대했다기 보다는 하층민의 관점에서 사실적인, 즉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종교화를 그렸고, 신앙을 모든 이에게 개방하려는 반종교개혁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듯 카라바조의 작품은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가끔은 거칠고 냉랭한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테네브리즘-Tenebrism'(또는 좀 더 넓은 의미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기법의 개척자였으며, 이러한 특징은 관찰자로 하여금 한 눈에 카라바조의 작품임을 구분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입니다.

르네상스의 화려함에서 벋어나 현실감 넘치는 사실주의의 지평을 열었던 카라바조의 흡입력 있는 그림은 그래서 모두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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