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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_그림이야기

우아한 다비드 냐, 걸크러쉬 유딧 이냐

by 토비언니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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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다비드 냐, 걸크러쉬 유딧 이냐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에 이어,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표 3대 거장 중 남은 두 사람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와 라파엘로(Raffaello Santi)의 작품을 감상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를 중시한 반면, 동시대 인물이자 그 보다 23살이나 어린 미켈란젤로는 조각의 부분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습니다. 우아하고 고운 그림에 능한 레오나르도에 비해, 과격하고 다혈질적 성격을 가진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곤 하는데요. 오늘은 회화보다는 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다비드상 David>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David by Michelangelo Buonarroti (1504) / 출처: Wikimedia Commons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대리석 거상인 다비드상은 혼란스런 15세기말부터 1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메디치와 공화정의 집권이 반복되던 피렌체와 로마교황청의 대립이 있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1501년 피렌체 정부의 요청에 의해 3년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은 어린 목동이었을 때 돌팔매로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죽여 나라를 구하며, 기원전 994년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 성서 속의 인물로 총 4미터가 넘는 크기의 대리석으로 제작이 되었으며, 늠름한 기상의 동상으로 피렌체 공화국 시민의 애국심 고취시키는 상징물로 존재했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이 동상이 세워지게 된 피렌체 시청의 시뇨리아 광장에는 도나텔로의 작품 유럽판 논개인 여전사 ‘유딧(Judith)’의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딧은 고대 신바빌로니아의 홀로페르네스와 막사에서 동침한 후 그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을 구했다는 인물로 그녀의 모습은 조각상뿐 아니라 후기 회화에서도 종종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의 1503년 작품의 그림에서 그녀는 우아한 벨벳드레스에 모자 장갑까지 걸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by Lucas Cranach the Elder /&nbsp;출처: Wikimedia Commons

 

다음은 1598년, 어두운 배경속에 인물들이 강렬한 빛을 받으며 극적인 효과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에서 가녀린 유딧의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Judith Beheading Holofernes by Caravaggio/&nbsp;출처: Wikimedia Commons

 

카라바조에 대해서는 잠시 후 설명을 더 드리겠지만 그의 추종자였던 당대 여자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a de Gentileschi)의 유딧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Holofernes beheading, by Artemisa de Gentileschi/ 출처:&nbsp: Wikimedia Commons

 

그녀가 실제로 젊은 시절 강간을 당했던 아픔을 마치 그림에 옮겨놓은 듯 여자의 증오심 가득한 표정과 남자의 목은 거뜬히 벨 수 있을 거 같은 팔뚝에서 보이는 것처럼 용맹한 여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당시 다비드 상이 유딧의 동상을 밀어내며 시청에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적장을 죽이고 이미 손에 적에 머리를 쥐고 있는 유딧과는 달리 아직 골리앗의 머리를 손에 넣지 않았지만 로마 교황청 쪽으로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으로 서있는 생동감 넘치는 미켈란젤로의 동상이 더 위협감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저는 유딧이 다비드상보다 더 무섭고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만. 사실 제가 Judith 시리즈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마치 처음으로 19금 잔인함을 목격한 것처럼 충격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그 당시 회화의 수준이 높았는지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전성기 르네상스를 빛낸 대표적인 3대 거장 중 마지막 남은 한 명으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Raffaello Santi)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청은 단순히 종교만을 집행하는 곳이기 전에 이탈리아 중부와 북동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닌 교황청 국가였습니다. 프랑스나 신성 로마제국, 스페인 왕정의 세력확대 속에 힘이 약화 되었던 로마 교황청은 화려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기 위해 고대 조각상들을 수집하여 바티칸 미술관을 설립하거나, 교황청 안에는 예배실의 벽화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탄생시키고, 라파엘로에겐 서명실안을 장식할 <아테네 학당>을 그리게 하는 등 왕성한 미술 후원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16세기의 중요한 작가로 주목받으며, 1520년 요절할 때까지 성모마리아와 성요한, 예수의 형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라파엘로는 평소 레오나르도에게서 피라미드 구도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인물의 명암을 나타내는 방법을 연마했고, 미켈란젤로에게는 역동적인 인물형(콘트라포스트)과 인체해부학적인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배워 자신의 그림에 응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 덕분에 라파엘로는 더욱 호소력 짙고 정적이며 평온한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던게 아닌지 생각된다.

 

Madonna della Rosa by Raffaello Santi/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작품 역시 피라미드 구조와 인물의 움직임, 효과적인 빛의 사용, 부드러운 색조 변화가 눈에 띄는 스푸마토 기법 등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은 것을 느낄수 있었고, 맨 뒤에 자리하는 성요셉에게만 다른 음영 효과를 주며 앞의 인물들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디테일은 그의 섬세함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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